집에 셜록 홈즈 단편선이 세 권이나 있다. 내가 사지는 않았는데, 가족 중에 누가 산 것인지 세 권이나 된다. 요새 집안에 쌓여 있던 책들을 정리하다 보니 그간 어떤 책들을 꽂아두고 살았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책의 겉표지에서 셜록 홈즈의 트레이드마크인 체크무늬 코트와 사냥용 모자, 그리고 파이프를 문 모습을 볼 수 있다. 한때 셜록 홈즈를 읽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유행이었기 때문에 표지만 봐도 누군지 금세 알 수 있을 만큼 잘 알려진 모습이다.
특히 저 파이프로 말할 것 같으면, 매번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시점에서 독자의 애간장을 참 많이도 태우던 소품이다. 소파에 깊숙이 기대앉아 파이프를 입에 문 채로 의뢰인을 관찰하고 사건의 단서를 꼼꼼히 추리하는 홈즈에게, 뭔가 알아낸 것이라도 있는지 독자를 대신해 친구 왓슨이 질문을 던지면 홈즈는 느긋하게 저 파이프를 빨면서 애매한 말만 던지곤 했다.
코난 도일이 만들어낸 위대한 캐릭터 셜록 홈즈는 큰 키에 날카로운 코를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예리하고 까칠한 깐에는 주변을 매우 어지르고 청결 관념도 제로인 듯 보인다. 실험을 한다거나 탐정으로서의 일을 하는 장면에서는 어딘지 불안하고 외골수로 보일 때도 있다.
셜록 홈즈의 친구이자 이 글을 이끌어가는 인물인 왓슨이 판단한 홈즈의 재능이다. 순수문학이나 철학, 천문학은 거의 무지한 상태, 정치에도 관심이 없다. 그렇지만 지질학, 화학, 해부학, 법률학, 그리고 범죄나 독성 물질에 관한 지식 등은 해박한 편이고 바이올린 연주에도 능하다. 그리고 운동신경이 좋아 봉술, 펜싱, 권투 등은 프로급이라 한다.
새벽기차로 오셨으면 무척 일찍 서둘렀겠네요. 게다가 역까지 이륜마차를 타고 진흙길을 달리셨군요.
단편 '얼룩무늬 끈'에서 홈즈가 의뢰인을 처음 만났을 때 한 말이다.
놀라실 것 없습니다. 아가씨의 장갑 속에 돌아갈 때 쓸 기차표가 보이는 데다가, 왼쪽 소매에 진흙 자국이 일곱 군데나 있기 때문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흙이 튀는 것은 이륜마차밖에 없으니까요.
그의 추리는 이런 식이다. 때로는 의뢰인에게 때로는 친구인 왓슨에게 실마리를 풀어놓고, 또 때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스스로 추리하고 결과를 찾아간다. 여기서 친구인 왓슨이 없었다면 무례한 언사와 자기 위주의 해석이 들어간 추리를 제멋대로 던지는 홈즈는 인상만큼이나 상당히 비호감이었을 것이다. 알고 보면 왓슨이라는 인물을 중간에 배치한 코난 도일이 정말 천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셜록 홈즈를 탄생시킨 코난 도일은 이 시리즈물로 많은 부와 명성을 얻었다. 작가로서의 성공을 보장해주는, 제대로 먹힌 캐릭터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성공한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시리즈물을 쓰는 작가는 어느 시점에선가 그 캐릭터를 버리고 싶어 하기 마련인가 보다. 그 평생의 캐릭터에 질렸을 수도 있고, 그쯤 해서 다른 글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욕망도 생길 것 같다.
코난 도일은 자신이 원하던 역사소설을 쓰기 위해 셜록 홈즈 시리즈물을 완결하기로 작정하고 단편 <마지막 사건>에서 홈즈가 라이헨바흐 폭포에 떨어져 죽는 것으로 홈즈 시리즈를 매듭짓고자 했다.
하지만 실제 인물을 모델로 만들어진 홈즈였고, 그가 사는 곳과 행동반경까지 소설 속 플롯 안에 이미 구체적으로 설정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홈즈는 소설 속 인물 이상이었다. 독자들의 항의가 너무 거세자 어쩔 수 없이, 죽은 줄 알았던 셜록 홈즈가 멀쩡하게 살아서 나타나는 걸로 시리즈는 다시 시작된다.
사실 이 책에 있는 작품들은 이미 오래전, 이 새로운 판본이 나오기도 전에 거의 다 읽었지만, 셜록 홈즈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읽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서 시간 날 때마다 한 편씩 읽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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