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에 대해서는 일전에도 두 번이나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극작가로도 시인으로도 유명하지만 나는 그의 희곡보다 시가 더 좋다. 인물은 시대를 잘 만나야 한다 했는데, 시대를 잘 만났는지 못 만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2차 세계대전 한복판에서 나치 세력을 피해 망명자로 떠돌기도 했고, 전후 분단된 고국에 돌아가서도 고향이 있는 서독 땅을 밟지 못 한 채 동독에 머물러야 했다.
전쟁이 끝났을 때 북 아니면 남을 택해야 했던 우리 역사와도 비슷하다. 한국전쟁 이후 지식층 중 다수가 북을 택했던 것처럼, 독일도 마찬가지로 동이냐 서냐의 갈림길에 놓였던 적이 있었다. 브레히트의 경우에는 스스로 동독을 택한 게 아니라, 서독 당국의 거부에 의해 동독으로 가게 되었다. 아마도 그가 미국에 망명 중이었을 때 반미 행위를 했던 것이 화근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결국 동독 공산주의 체제하에 살아남기 위해 한때 그는 스탈린 찬양 시까지 써야 했던 적도 있었다.
오늘 포스팅하려고 하는 브레히트의 시, '노자가 떠나던 길에 도덕경을 써주게 된 전설'은 이미 알려진 도덕경의 탄생 배경을 이야기로 풀어놓는 시다. 나치를 피해 유럽 북부로 망명했던 당시에 쓰인 시라서, 주나라를 떠나는 노자의 심경에 공감이 가지 않았나 추측하게 된다.
독일은 두 번이나 세계전쟁을 일으킨 나라다. 처음은 식민지 시대와 연결된다. 식민지 쟁탈전에 너무 늦게 뛰어들다 보니 한마디로 먹을 게 별로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제 1차 세계대전은 패배로 돌아가고, 독일은 전범국으로서 어마어마한 액수의 전쟁 배상금을 청구받았다. 대책 없이 돈을 찍다 보니, 결국 아이들이 돈으로 연을 만들어 놀고 돈다발로 불을 지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심각한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봉착한다. 국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던 그때, 구원의 손길을 내민 당찬 인물 하나가 등장한다. 브레히트가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에서 "엉터리 화가"라고 칭했던 그 인물, 히틀러였다.
지식층들은 속지 않았다. 히틀러가 지지 기반을 다져가고 있던 그때 지식층의 망명이 하나 둘 시작되었다. 당시 브레히트도 독일을 떠나 덴마크에 머문다. '칠쟁이 히틀러의 노래'같은 시를 통해 히틀러를 힐난했던 시인은 그때부터 한동안 독일에 들어갈 수 없었다.
주나라의 기운이 다하여 주나라를 떠나는 길에, 노자는 암문에 이르러 어느 세리와 마주한다. 세리는 노자에게 세금을 부과할 값진 물건이 있는지 묻는다. 그때도 통관절차라는 게 있었나 보다.
동자가 나서서, 이분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스승님이라고 말하자, 세리는 뭘 가르치는 사람인지 궁금했던지 동자를 향해, 스승에게서 배운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동자가 답한다.
"흐르는 부드러운 물이 시간이 가면 돌을 이긴다 했습니다. 강한 것이 부드러운 것에 진다는 의미를 당신은 아시겠지요."
노자는 황소에 타 있고, 동자가 그 옆에서 황소를 몰아 길을 걷고 있을 때, 멀리서 아까의 그 세리가 뛰어온다.
"이보시요, 어이, 잠깐 서시요!"
세리는 이번에는 황소에 타 있는 노자에게 직접 묻는다.
"그 물이 어떻게 됐다는 겁니까, 노인장?"
노자가 그에게 묻기를,
"그것이 당신에게 흥미가 있소?"
세리가 대답한다.
"나는 한갖 세리에 불과하지만, 누가 누구에게 이긴다는 것인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당신이 아신다면 제게 말씀해 주십이오."
세리는 노자에게 간청한다. 자신의 집에 가서 저녁도 먹고, 그 진리에 대해 글로 남겨 달라고.
노자가 그를 보니, 기워 입은 웃옷에 맨발이라, 어느 모로 보나 승자(부자고 잘난 사람)는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학문에 관심을 보이자 노자는 그의 청을 흔쾌히 수락한다.
"무엇인가 묻는 사람은 대답을 얻기 마련이지."
이렇게 세리의 집에 이레 동안 머물며 남긴 여든한 장의 기록이 바로 훗날의 도덕경이다.
브레히트는 시의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인다.
"이 현인만 찬양하지는 말자!
왜냐하면 현인으로부터는 그의 지혜를 얻어와야 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세리에게도 감사해야 한다. 그
가 바로 노자에게 지혜를 달라고 간청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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