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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글..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이성복

by 비르케 2021.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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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유곽에서' 중에서

'정든 유곽에서'.. 이 시는 이성복 작가의 초기작이다. 이 시를 통해 그는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라는 시집에 이 시가 함께 수록됐다. 내게는 여전히 와 닿지 않고 어렵게만 느껴지는데, 그러면서도 이런 표현은 전부터 좋았던 것 같다. 

'누이가 듣는 음악 속으로 늦게 들어오는 남자가 보였다'..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 이성복

이성복의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이 시집도 내가 오래도록 모셔두고 있는 책 중 하나다. 오래된 책인 만큼 많이 바래고 군데군데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를 얼룩이 보인다.

 

이제껏 이 책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마치 장편(掌篇) 하나하나를 보는 듯한 애잔한 기억과 무한히 펼쳐지는 작가의 연상에 나도 모르게 질질 끌려다니고 마는 그만의 마법이 있기 때문이다. '꽃 피는 아버지'에서도 느낄 수 있다.  

 

'꽃 피는 아버지' 중에서

아버지를 만나러 금촌 가는 날, 아버지는 반대로 일 보러 파주에 올라가 서로 길이 어긋난다. 그날 밤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 다 큰 자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한다.

"너는 내가 떨어뜨린 가랑잎이야."

 

언덕배기 손바닥만한 땅에 고추를 심어둔 아버지. 그런데 밤에 인근 공사장 인부들이 고추를 따간다. 아버지는 고함을 내지르고... 그런 아버지를 말리며 건네는 말, "내버려 두세요 아버지. 얼마나 따가겠어요"

그런데 보름 후 땅주인이 찾아와 집을 지어야겠으니 고추를 다 따가라고 한다. 공사장 인부들이 낄낄 웃는다.

 

어린 아들이 장날 떡을 사달라 해도 집에 가서 밥 먹자며 달래던 아버지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녹록지 않은 삶을 산다. 꽃모종을 하고 싶지만, 꽃밭이 없다. 

 

"얘, 내버려둬라, 본디 그런 양반인데 뭐."

무심히 말하는 어머니와,

자리에 돌아누워 눈썹까지 이불을 끌어당기는 아버지.

 

어머니에게 묻는다.

"엄마, 어디에 아버지를 옮겨 심어야 할까요"

 

'출애굽' 중에서

오늘 다 외로와하면 내일 씹을 괴로움이 안 남고 내일 마실 그리움이 안 남는다

절절하게 다가오는 시어들이 곳곳에 있으니, 읽다 보면 보통 문장이 아님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그러니 그 오랜 세월 동안 이사를 그리 다니면서도 놓지 않았던 이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1993년 8월 15일 1판 21쇄를 거친 이 책은,  20대의 내게 애잔한 감흥을 주었다. 가만히 앉아 20대를 보내고 싶지 않았던 나는, 어쩌면 "뒹구는"이란 단어 때문에 이 책이 더 좋았을 수도 있다. 방랑이 좋던 때였으니.

 

이성복의 한 소절을 나도 따라 해 본다.

"엘리, 그때의 나로 다시 돌아가게 해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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