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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옛날 용문역, TV문학관-휴가연습

by 비르케 2023.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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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용문역은 수도권 전철역 중 하나다. 전철 외에 새마을호, 무궁화호 등의 열차가 이곳을 지난다. TV문학관 - 휴가연습은 오래전 용문역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지금의 바뀐 용문역만큼이나 드라마의 내용도 생경함은 감안하고 보게 된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옛날 용문역, TV문학관-휴가연습

휴가연습 (1985년작)

원작: 김주영

출연진: 최화정, 강태기, 김소원, 이종남 등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한여름의 기찻길, 아련한 음악과 함께 옛날 용문역의 모습이 잠시 스쳐간다. 전역과 다음역인 '원덕'과 '지평'도 지금은 복선전철이 들어와 있다는 점만 다른 뿐, 그때나 지금이나 운행 중인 역 이름 그대로다. 

 

 

역 플랫폼에 놓인 벤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수미(최화정), 기다릴 만큼 기다렸는지 시계를 보다가 결국 일어나 플랫폼을 서서히 걸어 나간다. 어쩐지 옛날 CF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하다. 

 

용문역은 이 단막극의 첫 부분에만 등장한다. 플랫폼의 모습과 당시 용문역 주변 풍경이 살짝 비치고, 그곳에 버스를 향해 달려오는 수미역의 젊은 최화정이 있다. 지금도 톡톡 튀는 개성을 가졌지만, 그때도 그랬던 배우다. 막차라서 기를 쓰고 달려온 그녀가 버스에 오르고, 그 버스에는 준일이 타고 있다. 작고한 강태기 씨가 역을 맡았다.

 

수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 속에 어디 앉아야 할지 몰라 서 있던 수미는 결국 준일의 옆에 앉는다. 두 사람이 어색해 창밖을 보거나 데면데면 정면을 응시하는 동안, 김창환의 음악이 흐른다. '너의 의미'. 아이유가 다시 부르는 그 노래 맞다. 

 

'너의 그 한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

 

담배를 꺼내 피워무는 준일과 사탕을 입에 넣는 수미, 그때는 차에 타면 뭘 먹어야 하는 줄 알았던 때다. 그래도 버스 안에서 담배라니.. 역시나 수미의 발등에 담뱃재가 떨어지고..

 

이 작품은 지금 보기에 문화적 충격이 상당한 작품이다. 첫째, 대사나 행동이 지금과는 꽤 거리가 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조금 유치하다. 둘째,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차 안이나 방에서 담배를 피우는 등의 낯선 장면이 나온다. 셋째, 이 극에 등장하는 당시 사회적 통념이 이해가 잘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그것이 그때의 삶이었으니 그 부분은 참작하고 봐야 한다. 

 

 

버스를 타고 오는 도중에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차가 흔들리는 순간 수미와 준일은 서로 부딪히게 돼서 말을 트게 된다. 시골 학교 선생님인 수미가 맘에 드는 준일..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던 와중에 버스가 고장까지 난다. 언제 고쳐질지 모를 버스에서 내려 마을로 내려가는 사람들.. 지금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어찌어찌 수미와 준일은 남의 집에 묵게 되면서 하룻밤 사랑을 나누게 된다.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려운 두 사람, 두 사람 모두 사랑에 관한 상처가 있다. 

 

준일은 한번 다녀가라는 고모의 성화에 못 이겨 버스를 타고 고모집에 가는 길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도 해주지 않는 걸 고모에게 받으며 자란 준일, 고모를 만나 결국 그 사연에 대해 듣게 된다. 고모의 말에 당황하는 준일의 모습을 보면 꼭 사춘기 소년같다. 이 또한 시대적인 문화 차이의 일면이다. 

 

주인공 준일을 중심으로 작품 속의 여성들을 보면, 거짓과 위선덩어리들로 보인다. 초면의 남자와 하룻밤을 지새우고도, 얌전하고 초연한 표정으로 , "처음 뵙겠어요." 하는 인사를 건네는 수미의 모습은, 함께 누운 텐트에서 넘어오지 말라 으름장을 놓고 정작 다른 남자와 어울렸던 예전 여친의 모습과 겹쳐온다. 또 그에게는 정숙한 여성으로 비쳤던 고모의 모습과도 겹칠 수 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향해 간다. 처음 만났을 때의 호기심과 관심은 이미 사라지고 난 다음이다. 버스 안내양의 "발차" 하는 외침은 어쩌면 각자의 길로 나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암시하는 듯하다. 

 

아주 어렸을 때, 이 작품을 어렴풋이 보았었다. 그때 기찻길 옆 벤치에 앉아 있던 최하정의 모습이 너무도 예뻐서 기억에 오래 남았다. 봤어도 무슨 내용인 줄도 모르고 띄엄띄엄 봤던 작품을 일부러 찾아서 보았는데, 예전 생각이 새록새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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