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빛만 존재하는 어두침침한 집안에서 정신과약물과 술에 의지해 살아가는 불안장애를 가진 여주인공, 그녀는 어느 날 창문 너머로 이웃의 끔찍한 사건을 목격한다. 그런데 죽었다고 생각했던 인물이 살아 있고, 자신의 기억을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우먼 인 윈도, 기억의 왜곡과 공황으로 굴절된 문 밖 세상
원제: The Woman in the Window
원작: A. J. 핀 (2018 출간)
감독: 조 라이트
장르: 미스터리, 범죄스릴러
등장인물: 에이미 애덤스(애나 폭스), 게리 올드만(앨리스테어 러셀), 줄리앤 무어(제인) 외
러닝타임: 100분
상영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 '우먼 인 윈도' 줄거리
여주인공 애나가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아주 사소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남편이나 딸 모두 그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배려해주는 말투로 이야기를 받아준다.
어둑어둑한 그녀의 집에는 매주 심리상담사가 그녀를 방문한다. 제대로 앉지도 않는 채 딱딱하게 그녀의 말을 들어주는 심리상담사지만 애나는 그마저도 속을 잘 털어놓는다. 그녀는 커튼 사이로 지켜본 이웃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 그녀에게 심리상담사는 어딘지 시큰둥하면서도 못마땅한 얼굴이다.
어느 날 애나는 이웃에 이사 온 제인 러셀과 알게 되고 그녀와 아주 유쾌한 시간을 보낸다. 오랜만에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술을 마시고 대화다운 대화를 하는 그녀... 집안에만 머무는 애나라서 여느 때처럼 나이트가운 차림이다.
이웃에 좋은 친구가 생겨 기뻤던 마음도 잠시, 애나는 창문을 통해 제인이 칼에 찔려 쓰러지는 것을 목격하고야 만다. 넋이 나간듯 경찰에 신고하는 애나.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그 사건을 목격해 신고까지 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이상하다. 게다가 제인이 살아있다. 그런데 애나가 본 제인이 전에 본 그 제인이 아니다. 그녀는 무엇을 본 것일까.
애나는 곧 자신의 기억에 이상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남편과 별거 중이고 남편이 딸 올리비아를 데리고 있다고 말하곤 했었지만... 영화의 도입부로 돌아가, 그녀가 남편이나 딸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자세히 보면, 그들과 전화로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별거했다면서 전부인의 이야기를 이렇게나 다 들어주는 건가 싶었던 남편 에드와의 대화도 실제 대화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미 죽은 사람들이었다.
애나는 부정하고 싶었던 현실을 저버린 채, 그 위에 자기 자신이 새로 만들어낸 상상 내지는 허상 속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 기간 복용했던 정신과 약물들과 알코올로 인한 기억의 쇠퇴와 왜곡앞에 스스로도 자신의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빠져버린 상태였다.
어디까지가 현상이고 어디까지가 허상인지 재차 기억의 정립이 이뤄진다. 그 속에서 그녀는 제인이 남긴 낙서를 통해 제인이 자신의 집에 분명히 왔다갔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목격한 사건으로 인해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포인트는, 제인이 칼에 찔리는 것을 보았을 뿐 범인은 정작 벽에 가려 볼 수 없었음에도 범인을 한 사람으로 단정하게 된다는 점이다.
인기 소설 원작 영화들의 불편한 진실
'우먼 인 윈도'는 A. J. 핀이라는 미국 작가의 2018년 출간 소설이다. 출간 당시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고 우리나라에서도 2019년에 번역 출간되었다.
인기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은 소설에 비해 일정 부분 설명이 불충분한 곳들이 있다. 소설이라면 서술과 묘사만으로도 충분했을 법 한데, 이를 영상화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어려움들이다.
더군다나 미스터리나 스릴러물은 범인이 뜻밖의 인물인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크게 비중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인물들을 유심히 뜯어봐야 하는데, 소설에서는 쉽게 용인되는 이 부분이, 영화라면 '너무 생뚱맞은 인물이 범인이 된 게 아닌가' 하는 반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원작은 따라가야 하고 소설이 주는 복선과 반전의 묘미는 잘 살리기가 쉽지 않다.
주인공 '애나'라는 인물은 전직이 청소년 관련 상담을 해주는 일이었기 때문에 등장인물 중 이든(이선)이 상처 입은 아이일 것이라고 판단한 순간 그 아이에 대해 마음의 빗장을 바로 풀어버린다. 이 부분이 등장인물을 이해하는 데 있어 또 하나의 포인트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부분을 인지하지 못하고 영화를 보게 되면, "뭐지?", "갑자기 왜?"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 영화를 보며 느낀점
제인이 친근하게 다가와주었을 때 한층 밝아지던 애나의 모습, 제인에게 일어난 불행 앞에 용기를 내던 모습, 집안으로 숨어버린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전직과 연관된 일(청소년 관련)에 적극적으로 나서던 장면들을 통해 애나가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과거의 아픔을 씻을 수 있는 방법이 많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영화 속에는 어두운 집안에서 이웃을 관찰하는 애나와 함께, 그녀의 이웃들도 있다. 항상 커튼이 쳐져 있고 밤에도 불을 환히 밝히지 않는 집에 어른거리는 사람의 그림자를 보는 이웃들 또한 상당히 불편할 듯하다. 더구나 범인에게는 불편함을 넘어 불안함을 느끼게 하는 시선이다. 범인이 그녀를 의식하게 되고 그녀와 접촉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느린 전개, 어두운 집안을 배경으로 한 답답함, 가라앉은 색조가 미스터리와 잘 어울리는 영화였다. '애나'라는 역할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에이미 애덤스의 절제된 연기 또한 빛이 났다. 자신으로 인해 빚어진 가족의 비극 앞에 정신을 놓아버린 여주인공의 불안정한 시선, 아무 때나 누워 뒹굴어도 상관없을 듯한 헐거운 나이트가운 차림으로 희망 한 점 보이지 않는 느슨한 공기 속에 약물과 알코올에 취한 기운 없는 몸짓이 연민을 자아내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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