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미우라 토모카즈와 오다기리 조가 등장하는 일본 영화 '텐텐'이다. 노란 은행잎이 깔린 가로수길을 걷는 두 남자의 슬픈 가족사와, 울다 웃다 하게 되는 한 장면 한 장면, 그리고 눈물을 삼키며 먹는 카레 이야기가 있다.
미우라 토모카즈의 영화 '텐텐' - 가을에 생각나는 카레 느낌 영화
텐텐
2007년 제작, 2008년 9월 개봉
감독: 미키 사토시
출연진: 미우라 토모카즈, 오다기리 조 등
러닝타임: 101분
노란 은행잎이 깔린 가로수길을 걷는 두 남자의 뒷모습이 인상적이다. 어릴 때 친부모로부터 버림받고 홀로 살아가는 대학생 후미야(오다기리 조)와, 가족을 떠나보내고 혼자만의 쓸쓸한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중년 남자 후쿠하라(미우라 토모카즈)의 낯선 동행 이야기다.
'텐텐'은 후지타 요시나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이다. 학자금 마련 때문에 빌린 돈으로 인해 빚 독촉을 받고 있는 대학생 후미야... 어느 날 빚을 갚으라고 협박하던 후쿠하라에게서 솔깃한 제안을 듣게 된다. 자신과 함께 산책하는 조건으로 100만 엔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두 사람의 산책이 시작된다.
목적지는 카스미가세키, 경찰서가 있는 곳까지다. 어쩌면 위험한 동행길일지도 모를 후쿠하라와의 산책길에서 후미야는 처음의 낯섦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 점점 후쿠하라에게 부성을 느낀다.
가는 도중 두 사람은 마키코의 집에 들른다. 마키코는 후쿠하라와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부부 역할을 했던 가짜 아내다. 그런데 마키코에게 조카 후후미가 찾아오게 되면서 이들의 가짜 부부 역할이 다시 시작된다.
사실 그렇게 맛없지는 않았다.
다만 왠지 모르게 소란을 피워보고 싶었다.
후후미가 마요네즈를 뿌려준 음식을 입에 놓고는 괜히 맛없다고 과장된 표정을 지어보는 후미야... 이 사람들 모두가 정말 가족이라면 행복할 것만 같다. 겉으로 보기에 완벽한 부부와 아들, 그리고 후후미로 인해 온 집안이 따뜻하다.
다음날 마키코가 후미야에게 '처트니'를 사다 달라 심부름을 시킨다. 처트니(챠츠네)는 인도 양념인데, 마키코가 만드는 카레에는 처트니가 꼭 필요하다. 후쿠와라가 카레를 먹고 싶어 한다는 말에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비장한 표정이 되는 후미야다.
행복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다가온다.
그렇지만 불행은 터무니없이 빨리 온다.
처트니가 들어간 카레를 먹으며 후미야가 눈물을 흘린다. 카레가 그렇게 맵냐며 의아해하는 세 사람, 아니, 두 사람. 후쿠하라는 후미야가 우는 이유를 알고 있다.
사실 후쿠하라는 아내를 죽이고 경찰에 자수하러 가는 길이다. 나이 들어 도쿄 산책이나 하면서 여생을 다정하게 지내고 싶었던 아내는 그를 두고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죽이려고 했던 게 아닌데 허망하게 죽어버린 아내... 죽은 아내를 침대에 고이 두고 자수하러 가는 길에, 원래는 아내와 거닐고 싶었던 길을 누군가와 거닐고 싶어서 후미야에게 그런 제안을 했던 것이다.
경찰서 가기 전날 카레를 먹고 싶다고 두 사람이서 이야기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 카레를 먹고 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후미야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처트니를 사러 갔다 오는 길에 그대로 어디론가 도망가버리고 싶었다. 차마 후쿠하라가 떠나는 것을 볼 수 없었던 후미야다. 떠나갈 사람과 혼자 남겨질 것을 아는 사람, 이 두 사람만이 가슴 아프다.
후쿠하라의 아내가 연일 연락도 없이 출근을 하지 않자 직장 동료들이 후쿠하라의 집을 찾아나선다. 매번 오는 길에 뭔가 이벤트를 만나 후쿠하라 집에 오는 길을 방해 받으며 웃음을 선사해주는 역할을 한다. 직장동료로 나오는 사람 중에 마츠시게 유타카의 모습도 보인다. 고독한 미식가에 나오는 '하라가 헷타' 미식가 아저씨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경찰서에 자수하러 가는 후쿠하라의 뒷모습도 긴 여운으로 남는다. 약속했던 100만 엔 돈다발을 후미야에게 주는데 바람에 지폐 한 장이 굴러간다. 지폐를 줍고 보니 후쿠하라는 이미 큰길을 건너 훌쩍 사라져 가고 있다.
가족의 따스함이 묻어나는 영화 '텐텐(転転: 구르고 또 구른다는 뜻, 일본어에서 같은 단어가 반복될 때 뒷글자에 々를 써서 표기하기도 하므로, 転々로도 쓴다)', 은행잎 노란 물결이 연상되는 가을 영화라서 포스팅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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