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오는 길에 야채 파는 노점 할머니에게서 강낭콩과 가지, 그리고 꽈리고추를 샀다. 고기를 안 먹는 사람이다 보니 단백질 보충때문에라도 요즘 같은 때는 완두콩이든 강낭콩이든 갓 따온 콩을 눈에 보일 때마다 사 오게 된다. 보관을 위해 말린 콩보다 제철에 따서 바로 깐 콩이 맛도 좋고 건강에도 더 좋을 것임은 자명하다.
여름 제철 강낭콩과 가지, 꽈리고추로 만든 한 끼
빨간색 일반 강낭콩이랑 알록달록한 호랑이콩이 섞여 있다. 이 정도면 꽤 여러 끼니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콩을 좋아하면서도 예전에는 애들이 싫어해서 밥에 잘 안 넣었는데, 이제는 내가 먹으려고 챙겨서 넣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은 점이다.
우리집 아이들은 고맙게도 고교 때부터 둘 다 기숙사 생활하는 학교에 들어가 줘서 나를 일찌감치 가사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 지금은 둘 중 한 아이와 함께 있고 코로나19로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엄마를 몇 년간 떠나보았으니 엄마 밥을 당연하게 받지 않아 좋다. 그 때문에 나는 내 또래 엄마들보다 더 일찍부터 살림을 살짝 놓고 산다.
잡곡밥에 강낭콩 한 줌을 넣고 햇감자도 썰어서 넣었다. 쌀과 감자는 같은 탄수화물이라도 성분이 다르다고 한다. 자세한 성분까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감자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자주 이렇게 함께 넣어 먹는다. 특히나 햇감자는 꼭 이렇게 먹는다. 포실포실한 감자랑 밥알이랑은 씹는 느낌부터가 달라 밥이 정말 맛있어진다. 많이도 필요 없고 한 끼에 먹을 만큼만 넣어주면 된다.
가지랑 꽈리고추를 함께 볶은 반찬도 우리애들은 질색인데, 내가 좋아하다 보니 이제는 자주 하게 된다. 원래대로라면 가지를 일일이 찐 다음 만들어야 하는데, 속성으로 물을 살짝 넣어 물기를 날리면서 한소끔 익혔다. 그런 다음 물기가 어느 정도 증발하고 숨이 살짝 죽었다 싶을 때 약간의 간장과 소금, 다진마늘, 그리고 참기름을 넣고 주걱으로 몇 번 저어준다. 그리고는 바로 불을 끈다.
가지를 처음부터 기름으로 볶으려고 하면 가지가 기름을 다 먹어버려 정말 느끼하다. 가지는 기름이나 수분을 잘 흡수하기 때문이다. 먼저 수분을 흡수하게 한 다음, 기름으로 코팅하는 식으로 조리하는 것이 맛을 내는 비결이다.
가지나 꽈리고추 등의 야채를 요리할 때는 자주색, 초록색 등 자기 고유의 파릇한 색깔이 아직 남아 있을 때 불을 끄는 게 좋다. 숨만 죽어도 나중에 열기때문에 누그러지는데, 요리할 때 다 익혀 버리면 먹을 때는 정작 죽이 돼서 맛이 없다.
꽈리고추가 많아서 멸치볶음도 했다. 무늬는 멸치볶음인데, 멸치 말고도 솔치(어린 청어), 건새우도 함께 들어 있다. 솔치는 잔멸치보다 좀 더 비싸다. 가운데쯤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반짝거리는 아이가 솔치다.
다진 파 조금, 다진 마늘 조금에, 간장과 물엿만 넣어 섞어서 간단하게 소스를 만들어 두었다. 그런 다음 멸치랑 솔치, 건새우를 마른 팬에 부어 덖어준다. 덖는 이유는 냉장고에서 머금고 있던 습기를 날리고 고소한 맛을 살리기 위한 것이므로, 보송할 때까지만 하면 된다.
물기가 날아가고 난 다음에는 멸치에 약간의 식용유를 넣어 살짝 볶고, 아까 만들어둔 소스를 부어 골고루 묻도록 뒤적여준다. 양념이 들어가면 그때부터 타기 시작하기 때문에 탈 것 같으면 차라리 중간에 불을 끄고 양념을 섞어주는 것이 좋다. 통깨도 뿌려준다.
반찬을 하는 사이에 밥이 다 됐다. 오늘의 밥은 쌀과 찹쌀, 찰현미, 수수, 율무, 그리고 강낭콩과 감자로 완성되었다. 마트에서 한 번씩 세일할 때 먹고 싶은 잡곡을 집어오는데, 지난번까지는 노란색에 꽂혀서 녹두랑 차조 넣어서 해 먹다가 이번에는 톡톡 터지는 율무랑 수수를 넣었다. 수수 때문에 밥이 좀 빨갛다.
아들 밥에다도 강낭콩을 왕창 넣었다. 처음에는 싫어하더니 이제는 거부감 없이 잘 먹게 되었다. 감자랑 콩은 따뜻할 때 먹어야 맛이 좋기 때문에, 밥을 뜰 때 감자랑 콩은 다 걷어서 밥그릇에 담는다. 다시 말해 밥통에는 다른 잡곡밥만 있고 감자랑 콩은 남아있지 않게 다 떠낸다. 감자를 밥통에 남겨두면 누레지면서 식감도 점점 떨어지고 밥에서 냄새도 난다. 콩도 밥통 안에 두면 맛이 급격히 떨어진다. 양이 많다면 차라리 따로 꺼내놓았다가 다음 끼니에 섞어서 먹는 걸 추천한다.
강낭콩이 입에서 사르르 녹을 새도 없이 감자가 또 사르르 녹는다. 감자 전분때문에 밥도 더 쫀득쫀득하다. 제철인 가지와 꽈리고추도 수분을 적당히 머금어서 아작아작 맛있게 씹힌다. 솔치랑 건새우가 함께 들어간 멸치반찬도 고소하니 맛있다. 역시 제철에 나는 재료로 만들어 먹는 요리가 최고로 맛있는 밥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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