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보러 다른 지방에 가는 날, 처음 타보는 프리미엄 고속버스를 예약하고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늘 자차로만 다니다가 이번에는 터미널 가는 길까지 모두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오랜만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니 목적지까지 음악 듣다가 책 읽다가 스마트폰도 보다가...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편안함이 있다.
프리미엄 고속버스 처음 탄 날, 고속버스 풍경
서둘러 나선 아침길, 전철 7호선 타고 청담대교 지난다. 막 떠오른 태양이 구름 사이로 강물을 비춘다. 이 시각에 자동차를 이용하면 올림픽대로 타고 30분이면 가는 강남인데, 전철 타니 한강을 건너갔다가 다시 건너온다. 아침부터 기운이 절로 빠지는 듯하다가 이런 멋진 풍경 하나로 다시 만회가 된다. 7호선이 지나는 청담대교는 복층으로 되어 있어서 전철이 지나는 위로는 차들이 달린다.
호남선을 탈거라서 센트럴시티에 도착했다. 이른 시각이라 상가들이 아직 오픈을 하지 않았다. 늘 사람들로 붐비던 곳인데 이런 모습을 보니 또 다른 느낌이다. 앞쪽에 지하철 3, 7, 9호선 타는 곳을 가리키는 표시가 있다. 방금 전철에서 내렸는데 더 먼 출구로 잘못 나왔나 싶다. 7호선이나 9호선이 없던 시절에 이 인근은 눈 감고도 다니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가끔씩 헤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더군다나 경부선 아닌 호남선은 한동안 갈 일이 거의 없었다.
오랜만에 찾은 고속터미널 호남선은 표 사는 곳도 옮겨져 있고 창구도 많이 줄었다. 그 옆으로는 무인발권기들이 줄지어 서 있다. 한때는 수많은 창구가 나란히 늘어서 있었고, 각 창구마다 목적지를 외치며 표를 사는 사람들로 즐비했었다. 언젠가부터 무인발권기가 계속 늘고 창구는 더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무인발권기 앞에도 사람이 거의 설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미리 예약해둔 프리미엄 고속버스에 올랐다. 창밖에도 다른 프리미엄 고속버스가 보인다. 이 버스가 생기기 전까지 최고 사양이었던 우등고속버스(이름마저도 전세대 유물 같은..)를 제치고 지금은 프리미엄 고속버스가 대세다. 좌측에 2인석 우측에 1인석, 우등고속과 같은 구조인데, 좌석간 간격이 넓고 커튼이 있어서 개인 공간을 조금은 보호받을 수 있다.
좌석마다 개별 모니터가 달려 있어, 방송을 보거나 라디오를 청취하고, 폰 미러링을 통해 스마트폰으로 할 일을 대신할 수도 있다. 모니터 아래로는 컵 홀더와 무선 충전기, 노트북이나 책을 놓을 수 있는 홀더 등이 마련되어 있다. 좌석 시트는 뒤로 젖히거나 머리나 다리 받침을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드디어 고속버스가 움직이고, 수없이 오가던 낯익은 거리를 차창을 통해 본다. 다양한 복합 문화공간이자, 경부선과 호남선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철 3, 7, 9호선이 한데 얽혀 지나가는 고속터미널역 인근의 핫플레이스, 타 지역 사람들까지 더해져 지상뿐 아니라 지하까지 북새통을 이루는 이 거리를, 이렇게 한산한 시각에 지나며 찬찬히 보게 된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 건물을 지난다. 이 건물과는 나름 인연이 깊다. 그러니 그 모습을 오래도 지켜봤다. 한때 작은 불이 난 적도 있었는데, 그럭저럭 세월을 버텨가며 낡은 곳 수선해가며 그 자리에 잘 서 있다. 그 앞으로는 서초경찰서 반포지구대 건물이 있다. 그리고 그 건물 위에는 볼 때마다 기발하다 느껴지는 옥외광고가 보인다. 어딘가 출동하는 경찰의 발이 어딘가에 붙들려 있는 형상이다.
도로 정면에서 보면 달려가는 경찰의 모습이 꺾여서 보이지 않는다. 마치 귀에 구두를 대고 장난하고 있은 것처럼 보인다. 잘못 건 112 신고전화로 인해 긴급출동의 발목이 잡힐 수 있음을 경고하는 광고다.
신호를 제대로 받고 진입해도 마구 달려드는 차들로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 잠원로 이 구간도 이른 시각이라 한산하다. 낮게 드리운 구름에 기분마저 착 가라앉는다. '텔레토비'라는 프로그램이 유행하던 때, 일명 '텔레토비 버스'로 불렸던 서울 버스, 그중에 초록 버스(지선버스/ 마을버스)와 빨간 버스(광역버스)가 보인다. 이 외에도 서울에는 파란 버스(간선버스)와 노란 버스(순환버스)가 다닌다.
경부고속도로 진입로, 이 벽에 초록으로 뒤덮은 담쟁이들을 보면 이 벽이 얼마나 오랜 세월 이곳에 있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교통이 흐르는 방향에 따라 기울어진 풀들도 나름 이 벽의 이력을 설명한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참 재밌다. 먼지 이는 고속도로 옆, 깍아지른 높은 곳에 있어도 사람들의 야망만큼이나 건물도 더더더 높아간다. 도로 위에 도로가 지나고, 그 위에 또 집이 위를 향해 우뚝 서 있다.
초록색 나무들이 지나고 눈이 서서히 편안해진다. 다시 프리미엄 고속버스를 둘러본다. 처음 타본 사람답게 신기한 게 참 많은데, 골고루 잘 둘러보라고 옆자리 2인석에 아무도 안 탔다. 왼쪽 오른쪽 두루 보며 지난다. 쉭쉭 지나는 풍경들에 마음마저 편안하다.
고요한 들녘... 곧 추석인데 아직 곡식이 익으려면 한참 먼 듯 하다. 초록빛 벌판에 푸른 하늘과 흰구름이 참 잘 어울린다. 요새는 구름이 환상적인 날이 많다. 예전에는 당연한 하늘이었는데, 하늘도 다른 것들도 어느 틈엔가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일상으로 바뀐 게 많다. 그래서 이런 눈부신 날들에 더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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