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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시간을 거슬러40

못난이 다관을 보며.. 대학교 3학년때였나, 학교 앞 전통찻집에서 알바를 했다. 당시에는 '알바'라는 이 약어도 당연히 없었다. 아르바이트. 일상 속 외래어 중에 몇 안 되는, 독일어에서 온 외래어다. 정작 독일에서는 '공부하다'라는 의미도 함께 존재한다. "이히 아르바이테(Ich arbeite)..."라고 할 때는 한국말이 그렇듯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일한다는 것인지, 공부한다는 것인지.. 하지만 이때 공부도 그냥 공부는 아니다. 대학에서 하는 연구 비슷한, 일만큼이나 골치아픈 공부를 지칭한다. 어쨌든 나는 그때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전통찻집의 사장님은 나와 나이 차이가 거의 5살 정도밖에 안 나는, 같은 20대 언니였다. 언니는 차탁 몇 개로 시작해 가게를 넓혀가던, 지금 생각해봐도 참 억척스러운 사람이었다. 언니의 영.. 2022. 12. 24.
오래 전 사진 한 장 - 1978년 광주 동명동 농장다리(동지교) 몇 년 전 광주 동명동 일대를 돌아본 적이 있다. 어린 시절을 보낸 그곳에는 다행히 기억을 떠올릴만한 건물들이 드문드문 남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 모습도 사라질 것 같아 사진으로 몇 장 담아왔었다. 오래전 사진 한 장 - 1978년 광주 동명동 농장다리(동지교) 광주 동명동은 광주의 중심이었던 충장로, 금남로를 도보로 오갈 수 있는 동네다. 반대 방향으로는 광주고등법원이 있기도 하다. 예전에는 주변에 시장만 해도 세 개나 됐었다. 대인시장, 산수시장, 도내기시장, 이렇게 세 군데 시장을 골라 다녔다. (대인시장은 규모가 역대급이었는데, 언젠가 TV에서 보니 많이 쇠잔한 느낌이 들었다.) 한 마디로 말해 광주에서 제법 살기 좋은 동네였다. 이런 이야기들을 먼저 언급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제 보여줄.. 2022. 3. 18.
사진이 좋은 이유 (ft. 엄마의 사진 한 장) 사진을 정리하다가 기억에도 없는 장소를 발견할 때가 있다. 정말 다녀왔나 싶을 정도로 생소한 나머지 유독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다. 기억 위에 기억이 다시 새롭게 각인이 된다. 그러니 기억이라는 것도 상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사진이 좋은 이유 (ft. 엄마의 사진) 한 장의 사진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기억 속 그날의 날씨도, 함께 간 사람도, 그날의 색채와 냄새까지도 느껴진다. 시간이 가면 사진만 남는다는 말은 진짜다. 최근에 엄마의 앨범과 해묵은 봉투속에 있던 사진들을 일일이 촬영해 파일로 만들어드렸다. 오랜만에 만나게 된 사진들을 파일로 받아본 엄마는 화면을 보며 옛 기억을 떠올리셨다. 언제 그곳에 갔는지 기억마저 아슴한 오래된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새삼 놀라기도 하셨다. 이 사진 한장은 엄.. 2022. 2. 19.
전철에서 보는 한강, 오래전 수첩 속 성내역 신천역 전철타고 한강을 건넌다. 노약자석에 나란히 앉은 나이 지긋하신 두 분 말소리가 들린다. "방금 역이 예전에 무슨 역이었죠?" 잠실나루 역 지나며 한 분이 묻는다. 다른 분이 대답한다. "성내역이었죠." 전철 안에서 보는 한강, 오래전 수첩에 성내역 신천역 성내역,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까마득하게 그 이름을 잊고 있었다. 오래전에 역명이 바뀌었는데도 잠실나루역이 그 성내역이었다는 걸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2호선은 여전히 같은 노선을 달리는데, 그 속에서 사람만 많이 바뀌었나 했다. 2호선은 어느 도시이고 간에 대부분 순환선이다. 그래서 초행길이라도 일단 마음이 편하다. 방향을 거꾸로 탔더라도 최악의 경우 시간만 더 지체될 뿐 원점으로는 다시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초행도 아닌데 왠지 .. 2022. 1. 24.
구름정원 제빵소.. 용문산에 가다 양평은 자주 다니는 편이지만, 용문산에 가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봐야지, 가봐야지만 하다가 결국 채비를 하고 나섰다. 오래 걸을 생각은 애초에 없었지만 생각보다 날이 많이 찼다. 구름정원 제빵소.. 용문산에 가다 꽃 피고 나무마다 물오르고, 또 단풍이 들던 철에는 뭘 하다가 추운 날에야 찾은 용문산이다. 용문산 부근에 처음 갔던 건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이다. 근처에 체험마을을 찾아 용문역에 왔었다. 용문역까지만 오면 마중 오겠다는 체험마을 직원을 기다리며 용문역 인근을 구경했었다. 그날 체험마을에 도착한 후, 곧바로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애들과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했다. 거기까지 가놓고 혼자 바쁜 사이에 큰애가 대신 동생을 데리고 놀아주었다. (얕은 물인데 들어가기를 두려워하는 동생을 .. 2021.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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