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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중간에 갑자기 눈이 소복하게 내렸다.
흰눈을 보며 떠오르는 글귀가 있다.
첫 행을 따서 흔히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로 불리는 한시다.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눈 덮인 들판을 거닐 때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내 행적이 마침내 뒷사람의 지침이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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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이 온통 파묻힐 정도로 눈이 엄청나게 내린 날, 앞사람의 발자국을 따라가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이 말의 의미를 안다. 눈은 그쳐도 바람에 잔설이 날려 앞을 제대로 보기도 쉽지 않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안내하고, 도움 요청도 할 수 있는 세상에서는 상상조차 어려운 이야기다.
여담.
- 오래전 폭설 와중에 타국에서 초행길인 어느 동네를 빙빙 돈 적이 있었다. 카오스를 맛봤다.
- 더 오래전 우리 할머니는 눈보라 치는 날 집을 잃어버리셨다. 얼마나 놀라셨는지, 사람들에게 우리집이 있는 '○○맨션'을 물어봐야 하는데, '맨션아파트'가 어디냐며 찾아 헤맸다. (예전에는 '맨션'이라는 이름이 붙은 아파트들이 많았다. '아파트아파트가 어디예요?" 하는 격).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고 모두가 할머니의 치매를 의심했다. 하지만 91세로 돌아가시기까지 정신이 너무도 총총한 채로 가셨다. 눈 내리는 날의 카오스는 멀쩡한 사람도 정신을 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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