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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그리고 우울한 이야기들 아이들의 대부분은 어떤 계절을 좋아할까요? 제 아이들은 겨울이 좋다고 합니다. 작년에 그 혹독한 추위를 맛보고도 여전히 겨울이 좋다고 하는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하더군요. 눈이 내리니 좋다고 합니다. 학교 뒷마당 주변에 숲이 있는데, 작년 겨울에 아이들은 그 비탈진 곳의 얼음판 위에서 친구들과 함께 바지째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놀이를 하며 놀곤 했습니다. 바지가 젖고 진흙이 묻어도 아이들의 놀이는 그칠 줄 몰랐습니다. 그런 아이들과 반대로, 어른인 저는 이번 겨울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독일 와서 건강도 안 좋아진 것 같고, 가장 큰 여파는 피부에 나타나더군요. 피부가 몰라보게 거칠어 졌습니다. 추위때문일 수도 있고, 이 지역의 물 때문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도 드는데, 어쨌거나 독일에 와서 갑.. 2009. 10. 26.
유럽 거리를 굴러다니는 무늬만 밤 독일에는 '카스타니'라 불리우는 나무가 있습니다. 이 나무에서는 가을마다 밤이 떨어집니다. 때로 사람의 발이나 차 바퀴에 의해 노랗게 짓이겨지기도 하면서 도로와 숲 여기저기를 굴러다니는 이 밤들은 독일어로 정확히 '로쓰카스타니(Roßkastanie)입니다. 독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혼자 생각하기를, '독일 사람들은 밤을 먹지 않아 밤이 땅바닥에 굴러 다니도록 쳐다보지도 않나?'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수퍼에서 '식용 밤'을 파는 걸 보고는, 과연 왜 길에 굴러다니는 밤은 안 먹는 것인지 더 궁금해졌는데, 작년에야 비로소 그 미스테리를 풀 기회가 있었습니다. 작년 가을, 숲에 떨어진 카스타니의 열매를 몇 개 주워와 맛을 보았습니다. 못 먹을 음식인줄 애초부터 아는 이들이야 맛을 볼 기회도 .. 2009. 10. 17.
죽은 후, 나무와 함께 상생해 보는 건 어떠할까? 사람이라는 게, 또 생명이라는 게, 필시 영원할 수는 없으니 언젠가는 누구든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 자명한 이치입니다. 그저 이름 모를 한 줌의 흙으로 사라지느니, 어느 나무 아래 묻혀, 그 나무를 빌어 또 하나의 생명으로 상생할 수 있다면 어떠할까요? 얼마 전 인근의 수목장(樹木葬) 묘지에 다녀왔습니다. 독일에서는 대부분의 수목장이 거대한 숲 한 군데에 들어서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발트프리트호프(Wald 숲+ friedhof 묘지)라는 이름으로 불리웁니다. 수목장은 시신을 관에 넣거나(매장형) 불에 태운 후 가루로 만들어 분해 가능한 소재에 싸서(산골형) 나무 아래 묻는 형태로, 1993년 스위스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죽은 사람을 위한 공간인 묘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비단 우리나.. 2009. 10. 15.
말 잘 듣는 독일 개들, 주인 역할도 크다. 개 목줄 때문에 시비가 붙어, 결국 당사자도 아닌 엉뚱한 사람 한 명이 사망한 사건이 어제 있었습니다. 시비가 어떻게 불 붙었길래 그런 사고까지 발전하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개를 데리고 외출시 목줄을 꼭 매야 하는 것은 개의 오물을 치우는 일과 함께 한국에서도 이미 개를 기르는 사람의 당연한 의무가 되어 있는 줄로 압니다. 독일에서도 개를 데리고 외출시 목줄은 필수입니다. 거기에, 맹견들은 입마개까지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주인에게는 충성심 강한 착한 개일지라도 타인에게는 때로 공포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은 가옥 구조상 애완견의 배변이 실내에서는 어렵기 때문에, 개를 기르는 사람들은 이를 위해 일정한 시각에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산책로에는 애.. 2009. 10. 13.
할머니라는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집어든 케잌 며칠 전 마트에 갔다가 케잌을 하나 사오게 되었습니다. 빵이나 케잌을 사려던 게 아니었는데, 누군가가 집어 가져가는 걸 보고는, 나도 모르게 따라서 그것을 카트에 넣고 말았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가 고른 그 케잌을 우연히 보게 되었던 것이, 봉지에 적힌 '할머니(Oma)'라는 말에 순간 정신이 팔려 나도 모르게 카트에 넣어버린 것이었습니다.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아니었는데, '할머니의 낲쿠헨(Oma's Napfkuchen: 사발 모양의 틀에 반죽을 담아 오븐에 구워낸 카스테라 종류)'이란 한 마디에 그렇게 하고 말았던 것이죠. 서양에서도 할머니는 한없이 좋은 존재인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나로 하여금 이 케잌을 사게 만들었던 마트에서의 그 사람도, 나와 똑같이 '할머니'란 단어에 맘이 약해졌.. 2009.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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