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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프라이어로 만든 간단한 점심 최근에 빵을 많이 구매할 기회가 있었다. ▷▷파리바게뜨에서 케이크 대신 빵 한 가득 소가 들어간 빵은 바로 먹는 편이 좋지만, 오래 보관이 가능한 빵은 냉동실에 넣어두면 먹고 싶을 때 꺼내 먹을 수 있어 편리하다. 촉촉한 수분까지 그대로 얼어있는 상태라서 다시 구우면 갓 구운 빵처럼 맛이 좋다. 토종 효모빵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빵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일반 식빵보다 고소하고 풍미가 가득 느껴지는 데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 자주 애용하고 있다. 바게트처럼 생겼지만, 바게트보다 밀도가 더 높다. 효모빵과 식빵을 이용해 에어프라이어로 간단한 점심 겸 토스트를 만들려고 한다. 재료는 빵과 소시지, 그리고 빵에 바를 잼과 소스 등이 필요하다. 치즈와 야채도 있으면 더 좋다. 효모빵.. 2021. 4. 25.
치아 뼈이식에 임플란트까지 미루고 미루던 임플란트 치료를 받았다. 3년 전쯤에도 치과 의사샘으로부터 임플란트 권유를 받았던 적이 있는 치아다. 겉보기에는 멀쩡한데 뿌리 끝부분만 썩은 거라서, 그때는 내 치아를 끝까지 써볼 생각으로 염증치료만 받고 말았다. 입 안에다 나사를 박는 일은 최대한 미루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작년에 치통이 재발해서 치과를 또 찾았다. 이번에는 다른 치과다. 여기서도 임플란트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그런데 환자인 나를 설득하는 게 지난번과 달랐다. 썩은이 방치, 어떤 결과? 지난번 치과 의사샘은 치아의 끝부분이 많이 썩었으니 발치하고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만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번 의사샘은 치아 끝부분이 썩은 게 왜 문제가 되는지를 설명했다. 치아가 썩은 걸 방치하면 잇몸뼈까지 녹게 되고, 그 잇몸뼈.. 2021. 4. 24.
새 아파트 주방을 뜯어 고친 사연 새 아파트에 입주할 때는 웬만하면 옵션을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 하자 때문이다. 아무리 최고 브랜드의 아파트라 할지라도 하자 없이 완벽할 수만은 없다. 디자인이나 마감재가 맘에 안 든다고 맘대로 바꿨다가 만의 하나 큰 문제가 생겼을 때 아파트 시공사의 책임 소지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 전 새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주방을 뜯어고친 경험이 내게도 있다. 구조의 편리성을 버리고 전면동의 채광과 뻥 뚫린 조망을 우선으로 택해 프리미엄까지 얹어주며 마련한 새 공간이었다. 그런데 이 아파트 타입들 중에 유독 내가 고른 타입에 최악의 맹점이 있었다. "새 아파트인데? 냉장고 자리가 없다고?" 냉장고 자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냉장고는 대체 어디에다 둬야 할까? 더군다나 우리집에는 양문형 냉장.. 2021. 4. 23.
역사박물관에서 보는 7080 그때 그시절 7080 그때 그시절로 잠시 과거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작은 공간이 하남 역사박물관에 마련되어 있다. 지난번에는 국민학교와 옛날 교복을 포스팅 한 바 있다. 오늘은 그때 당시 풍경을 옮겨보려 한다. 7080 그때 그시절 번화가의 모습이다. 정장을 입은 여성들이 보인다. 뭔가를 홍보중인지 어깨띠를 두른 모습이다. 양품점도 눈에 띈다. 양품점은 서양에서 들어온 물건들을 팔던 여성들만의 핫플레이스였다. 1987년 12월 3일에는 중부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올림픽이 있기 한 해 전이다. 그 옆으로 노을을 배경으로 팔당대교가 한창 공사중인 사진도 있다. 팔당대교는 두 번이나 재시공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1995년에 완공되었다. 지금은 교통 체증 때문에 바로 옆으로 제2 팔당대교를 건설하고 있는 중이다. 1972.. 2021. 4. 22.
노자가 떠나던 길에 도덕경을 써주게 된 전설 - 브레히트 독일의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에 대해서는 일전에도 두 번이나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극작가로도 시인으로도 유명하지만 나는 그의 희곡보다 시가 더 좋다. 인물은 시대를 잘 만나야 한다 했는데, 시대를 잘 만났는지 못 만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2차 세계대전 한복판에서 나치 세력을 피해 망명자로 떠돌기도 했고, 전후 분단된 고국에 돌아가서도 고향이 있는 서독 땅을 밟지 못 한 채 동독에 머물러야 했다. 전쟁이 끝났을 때 북 아니면 남을 택해야 했던 우리 역사와도 비슷하다. 한국전쟁 이후 지식층 중 다수가 북을 택했던 것처럼, 독일도 마찬가지로 동이냐 서냐의 갈림길에 놓였던 적이 있었다. 브레히트의 경우에는 스스로 동독을 택한 게 아니라, 서독 당국의 거부에 의해 동독으로 가게 되었다. 아마도 그가.. 2021.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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