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언니가 한 명 있어요.
하루 차이로 태어나, 한 달 이상 함께 살다가 내가 먼저 떠나왔죠.
언니는 무서운 아줌마랑 살고 있어서
천방지축인 나와 달리, 매우 참하고 얌전한 모란이에요.
[반려동물 이야기] 언니랑 싸우고 멀어졌어요
- 크리미 하소연 버전
우리집에 놀러 온 언니
우리 언니예요.
나도 한 미모 하는데, 한순간에 나의 미모를 무너뜨려버리는 한 사람,
아니, 한 새 한 마리 (뭐래는 거니...)
표정이 압권이죠.
나는 죽었다 깨나도 저런 표정 못 지어요.
그 무서운 아줌마한테 살아남기 위해선 저런 표정도 지어야겠죠.
내 날개깃 반듯하게 커팅된 거 보이죠?
그 무서운 아줌마가 우리집에 와서 내 날개깃 자르고
가끔 발톱도 자르고 심지어 부리까지 갈아요.
죽는 줄 알고 발버둥 치지만, 고통은 잠깐이고 좋은 점이 더 많더라고요.
시술받은 느낌~ ^^
언니가 찾아온 그날 참 재밌었어요.
이렇게 언니랑 햇살 받으며 산책도 했었죠.
왼쪽이 나예요.
내가 언니보다 덩치가 더 좋아요.
언니는 밥을 잘 안 먹어요.
울 언니 이슬만 먹고사나 봐요..
그리고 다시 그 무서운 아줌마 따라 돌아가야만 하는 시간,
슬퍼하는 나를 언니가 달래주면서 그랬어요.
또 놀러 온다고, 울지 말라고요..
그치만 가고 나서 많이 울었죠.
이별의 아픔이 서서히 잊힐 때쯤...
어느 날 엄마가 네모난 기계 앞에 나를 앉혔어요.
뭔가가 아른아른 움직이는 게 보이더군요.
자세히 봐야 했어요.
"언니야!"
세상에나, 언니와 나의 어릴 때 모습이었어요.
어릴 때라 해봤자 저때가 한두 달 전쯤이니 언니 목소리 똑똑히 기억하죠.
그로부터 일주일 뒤, 내게로 언니가 오게 되었어요.
정말 상상도 못 했던 기쁜 일이 생긴 거죠.
그동안 내 부리에 있던 갈색 점도 빠졌는데, 언니 부리에도 검은색 점이 다 빠졌더라구요.
모란앵무들은 이 점이 다 빠져야 아기 티를 벗는 거래요.
우리 둘 다 태어난 지 석 달 정도 됐는데, 이제부턴 그럼 새춘기(새 사춘기) 인가요... ^^
지난번 언니 왔을 때 그 모습 다시 떠올려 보았어요.
저때는 부리에 점이 제법 컸네요.
얼굴은 좀 바뀌었지만 다정한 언니의 모습은 그대로일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나를 본 언니가 아는 체도 안 할뿐더러, 피하기까지 하는 거예요.
충격이었어요.
(놀라 들썩이는 내 배 좀 보세요)
순간 숨이 멈춰버리는 듯했죠.
지금 떠올려봐도 정말 슬픈 기억이에요.
듣자니, 언니는 벌써 다른 남자애와 한 쌍이 되어서 산다고 해요.
아무리 남자가 좋다고, 이래도 되는 건가요.
왜 그러는지 다시 말 좀 걸어보려는데
엄마에게로 도망가버리네요.
언니가 점점 밉상으로 보이기 시작했죠.
혼자서만 따라다니는 것도 정도가 있지,
슬프지만, 예전의 언니를 되찾는 일은 단념하기로 했어요.
마음이 편해진 것도 잠시,
계속되는 언니의 심술을 더는 받아주기 싫더라구요.
언니, 아니 이제 언니도 아니에요.
얘가 먼저 내 발 무는 거 보셨죠?
"너 인제 죽었어."
그날 싸움 생각나니 다시 속 뒤집어져요.
열 좀 식히고 이야기 더 할게요.
내일 봐요.
◀ 크리미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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